Thursday, August 24, 2006

느낌이 있는 삶34. - RH-787음독 후 3달 정도가 경과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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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34. - 1977년 11월 RH-787음독 후 3달 정도가 경과한 시간.



여기서 한 가지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자체나 그 사건들이 가져다주는 의미적 전달을 말 할 때에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험, 검증, 통계, 확률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만이 유일무이한 확신이고, 답이라는 황소고집도 피하고 싶다.

다만 가끔은 이 두 가지, 일반적으로 통하는 보편성과‐다른 사람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개인적인 체험이나 감정이 중요할 때가 있다.

2005년에도 들어 볼 수 있는 종교적 체험, 종교적 신비, 종교적 감정의 범위 속에는 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높이 평가 할 때만이 가능한 말들이다.


77년 11월초 RH-787로 음독자살을 했고, 몸에 여러 가지 희귀한 병리 현상이 나타났다고 몇 번 언급했다. 그 병리현상 중 하나가 췌장의 손상과 함께 필연적으로 온 I형 당뇨병이었다는 것을 이미 수 없이 밝혔다. RH-787의 독성의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췌장의 손상이 크다’는 것이 후 일에 RH787의 해독과 병리 현상에 대한 논문발표에 여러 차례 보고 된 적이 있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는 간호원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았고, 퇴원해서도 2달 넘게는 큰누이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았다. 집에서도 처음에는 규칙적으로 맞다가 몸 상태가 너무 악화되자 맞는 횟수를 줄이다가 78년 1월 정도에서 아예 중단했다.


인슐린 주사도 사람이 살기 위해서 선택한 치료방법이지만, 이미 죽어 가는 상황 앞에서는 더 이상 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었고, 주사바늘을 꽂아야 할 몸이 너무 마르고 악화된 상태여서 주사바늘을 꽂을 곳도 없었다.


RH-787 음독과 함께 중증의 당뇨병이 발병했지만, 죽어가는 몸 앞에서 당뇨에 대한 치료는 나와 가족들한테 이미 관심 밖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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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음독 후 3달 정도가 경과 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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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정상 인슐린 주사를 더 이상 맞을 수가 없어서 음독한 후 3달 만에 주사 맞는 것은 끝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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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23, 2006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33.-1980년 냉해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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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33. - 1980년 냉해의 여름은 내 생애에 가장 편했던 여름!



80년의 우리나라는 정치뿐만이 아니고 기후까지도 냉해로 고생한 해였다.

냉해로 인해서 곡식들은 제대로 자라지를 못하고 결실을 못 맺어 근래에 보기 드믄 ‘대흉작’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서늘한 여름날의 기후 덕분에 견디기 쉬운 한 해였다.

2월 초에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 한 뒤에 그 해 4월 19일,20일 치르는 대입 검정고시에 응시해서 합격을 했다. 뜻밖의 결과였다.

학원에서도 쉬는 시간에는 학원의 좁은 책상 위에 누워 있을 때가 많아서 학원 강사와 다른 학원생들에게 눈총을 받은 적도 몇 번 있었다, 고작 4교시 수업만 받고도 집에 오면 2∼3시간 이상의 잠을 자야만 하는 몸으로 학원 등록 후 70여일 만에 대입학력인정합격증을 받았으니, 나는 물론이고 학원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학원에서 내가 속한 그룹은 원래는 4월 시험에 대비해서 편성한 그룹이 아니고 8월초에 보는 시험에 대비해서 편성한 그룹이었다. 4월 시험은 8월 시험의 시험유형을 알아보기 위해서 미리 보는 시험인데, 시험과목 9과목 중 암기 과목 몇 과목만 먼저 붙을 요량으로 암기 과목 위주로 공부해서 시험장에 갔었다.

학원 다닐 때는 삐쩍 마른 몸 덕분에 엉덩이가 너무 아파 방석용 스펀지를 한꺼번에 3개씩이나 넣어서 만든 크고 두꺼운 방석을 가지고 다녔는데(그 시절의 몸무게는 고작 43~44kg 정도였음), 시험 볼 때도 이 방석을 시험장에까지 들고 가야만 했다.

1교시 시험을 치르고 교단 위에 그 방석을 놓고서 그 위에 눕고, 2교시 끝나면 다시 눕고... 시험장에서까지도 쉬는 시간에는 누워있어야만 했었던 나의 기막힌 행동을 시험 감독관들과 다른 수험생들은 황당하게 바라보았지만,
....

다른 방도가 없었다.







1980년 4월 대입 검정고시 기간 중에는 어이없고도 황당한 수험생이었지만 시험운도 따라서 내가 공부한 것들이 많이 출제되었고, 취약 과목인 영어와 수학은 앞자리 수험생의 답안지에서 반 정도를 베꼈다.(보고 썼다)


왜? 전부 안 베끼고 반만 베꼈냐고 묻는다면, 앞의 수험생 실력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더구나 80년 당시는 검정고시 채점이 기계가 아닌 사람 손에 의해서 채점되는 방식인데, 앞·뒤 수험생의 답안지가 똑같으면 뻔한 결과를 낳기에 “어차피 영․수는 대충 찍을 판국인데, 찍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산으로 반 정도만 베꼈다.


대입 검정고시 시험제도는 총9과목의 평균 점수가 60점 이상, 그리고 전 과목 4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만 한다. 혹 9과목의 평균 점수가 60점이 아니고 70-80점 이상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치룬 시험생일지라도 1과목이라도 40점 이하가 나오면 전 과목 합격이 아니고 60점 이상 취득한 과목만 부분적으로 인정해주는 시험제도이다.(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2005년 현재는 시험 생들의 합격률을 높여주기 위해서 시험 과목도 8과목으로 줄었고,40점 이하의 ‘과락’제도로 없어졌다고 한다)


1980년 4월의 시험결과는 평균점수 62.5아니면 63.5의 턱걸이 점수로 합격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4월 19일,20일 실험을 치르고 5월 15일에 합격증을 받았는데도 검정고시 학원은 처음 예정 되로 7월 말까지 다녔다. 집념, 실력, 운, 컨닝...으로 대학 입학 자격 까지는 취득을 했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대학 입학은 너무 거리가 먼 상태임을 알기에 대입입학자격 합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다니는 검정고시 학원을 합격증을 받고도 다니는 희한하면서도 희귀한 학원생이 되었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날씨까지 서늘해 그 해 여름은 내 생애에 가장 편한 여름이 되었다.




Tuesday, August 22, 2006

느낌이 있는 삶32.-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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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32. - 미치도록 열심히 살아 온 대가는 ‘미친놈처럼’ 이라는 수식어!




29년을 내 몸과 싸우면서 살아 왔다.

17살 때 음독자살한 댓 가로 나에게 뒤따라 온 결과들이 너무 잔인했다.
지금 내가 겁내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다.

병들고 아파하면서도 자신이 속해 있을 ‘자리매김’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몸이 망가져 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진액이 빠지듯이 온 몸의 기능들이 빠져나간 뒤에 몸 여기저기에 손상을 입고 서서히 기능들이 망가져가면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게 싫어서 지난 세월을 미치도록 열심히 살아 왔다.


그 댓 가는 내 피붙이, 내 친척, 주위사람, 교회사람,...적어도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 자신을 ‘미친놈처럼’ 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만들었다.


29년이 지난 지금은 내 가족이나 주위 몇몇 사람들로부터는 조금은 후한 점수를 받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주변사람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미친놈이나, 괴상한 놈, 희한한 별종’으로 취급하기가 일수이다.




Monday, August 21, 2006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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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31. - 나의 화려한 인생살이와 찬란한 여름(?)




나에게 여름은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6개월이고, 그 다음은 겨울이다. 우리나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계절이고 나에게는 여름과 겨울, 그리고 환절기만이 존재한다.

특히 여름 3달 정도는 먹는 것 자체가 지겹다.
가만히 있어도 무력증에 빠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몸에 열이 나서 너무 힘든 판국에 무엇을 준비해서 먹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때가 많다.

엄살도 아니고 사치도 아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식사준비를 하기 위해서 잠깐 동안의 시간이라도 몸을 움직이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에 열이 올라서 힘들어야 하고, 음식을 요리 할 때 나는 열은 힘든 몸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몸이 무력감에 빠지면 비위까지 약해져서 평범한 음식냄새까지도 속을 뒤집어 놓게 만들고,...

이 모든 것을 참아내면서 억지로 먹은 음식물들은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부채질 하는 역할을 하는 통에 몸을 못 견디게 힘들게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헉헉대며 힘들어 하다가 물 속에 몸을 담가야 하는 여름 3달 동안에는 밥은 1주일에 1번 정도 해 먹고 나머지는 과일·주스·고구마·빵·떡·아이스크림·맥주·포도주· 매실․미숫가루…등으로 대체한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 정도 먹던 밥도 2003년 여름까지였고, 2004년 여름 3-4달 동안에는 밥 한번 못 먹었다.

......


나에게 있어서 1년은 이미 먼 옛날일 뿐이다.


진짜 힘들고 더위를 탈 때면 먹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고역으로 다가 올 때가 많다. (이 부분도 1권과 중복되는 내용이다)
2003년 여름까지는 먹기 싫은 밥 억지로 먹는 것보다, 아예 아이스크림에 맥주를 부어 먹거나 포도주에 꿀을 진하게 타서 먹고서 야채나 과일을 씹어 먹는 것으로만 한 끼 식사를 대신 할 때도 있었다.


굶고 싶어도 인슐린 주사를 맞는 I형 당뇨병 환자는 굶을 수도 없다. 밥 먹는 게 너무 힘들면 아이스크림에 맥주를 부어먹거나 포도주에 꿀을 타서라도 일정량의 탄수화물이나 당질을 섭취해야 한다.

2004년 여름부터는 이 부분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내 몸 자체가 나쁘게만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


나의 화려한 인생살이와 찬란한 여름(?)은 이렇다.


Saturday, August 19, 2006

느낌이 있는 삶30. - 나의 지겨운 ‘여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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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30. - 나의 지겨운 ‘여름살이’

94년 미국에서 폭염으로 죽은 사람이 800여명이라는 숫자는 엄청나게 들려도, 2억 5천만이 넘는 미국인구 가운데 800여명이라는 숫자는 30만 명 중 1명 일 뿐이다.


누가 30만 명 중에서 1명만이 가지고 있는 희한한 심장을 사람들은 이해해 줄 수 있는가!


또 2002년 프랑스에서 폭염으로 죽은 14000여명도, 6000천만명중의 14000명이라면 대략 4300명 중의 1명일뿐이다.

4300명 중의 1명이라는 숫자도 웬만한 아파트단지의 전체인구중의 1명일뿐이다. 더위로 인해서 1000가구 정도의 아파트 단지에서 1명이 죽었다면, 이 죽음은 단단한 일이 못 될 것이다.

.....

나의 끝없는 반항과·절규·그리고 투쟁은 나만이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이러한 삶의 상황 속에서 본능적으로 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2000년 이후에 내가 부딪쳐야 했던 힘든 인생살이 때문에 내 몸 중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곳도 열과 관계가 깊은 심장, 신장, 눈이고 나를 분노하게 했던 사람들과도 갈수록 나빠지는 심장, 신장, 눈 덕분에 싸움 한번 제대로 해 볼 수 없었다.

또 해서도 안 되는 몸이고, 심장이다.(내가 쓴 1권 ‘아직도 살고 싶다’ 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언급되어 있다. 이런 증상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는 환자가 있다면 홈페이지에 1권,2권,3권의 전 내용을 수록해 놓았으니 읽어 보기 바란다.)


보통 정상인들도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체온이 올라간다. 또 밥이나 그 밖의 음식물을 먹어도 섭취한 음식물의 열량에 의해서 체온이 올라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건강한 몸일수록 일시적으로 올라 간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몸의 신진 대사기능의 혜택으로, 아니면 올라간 체온을 이겨 낼 심장 덕분에 일상적으로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고, 먹는 것에 겁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77년 가을까지는 정상적 사람들 측에 끼어서 살았었다.
77년부터 2년 동안은 죽어 가느냐고 내 몸이 겪고 있는 증상들에 대해서는 체념했었다.


교회에서 종교적 체험 덕에 살아 날수 있었던 79년 여름이후 더위, 열, 햇볕과의 싸움에서 처음에는 이상했더라도, 그 다음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도 남들처럼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이 안 되는 것을 알고는,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했고, 분노하고, 절망하기 시작했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가장 용감하게, 왕성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다가도 햇살의 강도가 달라지는 3월부터는 무조건 햇볕을 피하 게 된다.(한 겨울에도 ‘햇볕 쬐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
그리고 4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으로 햇볕, 더위와 싸우기 시작하여, 6․7․8월 온도가 33˚∼36˚로 올라 갈수록 혈관 속의 피가 더워지고, 뜨거워진 피로 인해서 심장이 너무 힘들게 작동하기 시작하면 숨쉬는 것만도 힘들어서 헉헉거려야 한다.


7-8월의 본격적인 더위 속에서는 미지근한 물 속에 몸 담그는 것을 하루에 10번 까지도 하면서 보내는 그 지겨운 반복을 25년 동안 해오면서 살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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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지겨운 ‘여름살이’ 이다.



Friday, August 18, 2006

느낌이 있는 삶29. -가난한 심장병환자들의 ‘열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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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29. -가난한 심장병환자들의 ‘열과의 싸움’



참고로 ‘열과의 싸움’의 한 예를 덧붙이면, 94년도 여름에 폭염이 미국전역을 강타했었다. (이 부분은 1권과 중복되더라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 때 폭염으로 미국전역에서 800명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었다.(831명으로 기억) 죽은 사람 대부분이 늙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유난히 심장병 계통이 많은 것에 주시하기 바란다.


앞부분에서 지루할 정도로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요인이 온도·햇빛·열·빛·습도....라고 수 없이 밝혔다. 94년 미국의 여름을 예로 든 것은, 똑같이 늙고·가난하고·심장병 질환으로 고생한다고 하더라도 지내는 거처(집)만 제대로 확보하면 살인적인 폭염이라도 견딜 수 있고, 거처(집) 가 변변치 못하면 견뎌 낼 수 없다는 것을 몇 줄로 이해시키려는데 있다.

또 2002년 프랑스의 폭염을 예로 들어도 이와 비슷하다. 2002년 여름에 살인적인 더위가 2주 동안 프랑스 전역을 엄습해서 프랑스 전역에서 14000여명, 파리시내에서만도 5000여명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때도 94년 미국의 폭염 때처럼 폭염 때문에 죽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늙고, 병들고, 가난한...그 가운데서도 심장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는 ‘심장병 환자’들이 희생이 유독이 컸었다.


94년 미국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800여명의 사람들, 2002년 여름에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서 프랑스 전역에서 죽은 14000여명들의 대부분은 집에 변변한 냉방기기를 갖추지 못하고 살았었던,

‘가난한사람들이었다

는 것이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늙고 병든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이 집에 냉방기기를 못 갖추고 사는 사람들만이 폭염에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분으로 그 소식을 들었는지 난 모른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 마다 온 몸의 신경이 경직되다시피 하는 것은 내 상황도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도 온도와 습도가 적당한 실내에서는 I형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보통의 중증 당뇨병환자들과 비슷하게 생활을 한다.

그러나 햇볕이 강해지고, 기온이 올라가는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의 6개월 동안은 앞에 열거한 나만의 특수 상황에 부딪쳐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아니면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바짝 독이 올라서 헉헉거리며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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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만큼 심장이 극도로 약한 사람들은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체온이 올라가도, 또 외부의 온도가 너무 높아져도,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도, 극적인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