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3, 2006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33.-1980년 냉해의 여름!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33.


느낌이 있는 삶33. - 1980년 냉해의 여름은 내 생애에 가장 편했던 여름!



80년의 우리나라는 정치뿐만이 아니고 기후까지도 냉해로 고생한 해였다.

냉해로 인해서 곡식들은 제대로 자라지를 못하고 결실을 못 맺어 근래에 보기 드믄 ‘대흉작’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서늘한 여름날의 기후 덕분에 견디기 쉬운 한 해였다.

2월 초에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 한 뒤에 그 해 4월 19일,20일 치르는 대입 검정고시에 응시해서 합격을 했다. 뜻밖의 결과였다.

학원에서도 쉬는 시간에는 학원의 좁은 책상 위에 누워 있을 때가 많아서 학원 강사와 다른 학원생들에게 눈총을 받은 적도 몇 번 있었다, 고작 4교시 수업만 받고도 집에 오면 2∼3시간 이상의 잠을 자야만 하는 몸으로 학원 등록 후 70여일 만에 대입학력인정합격증을 받았으니, 나는 물론이고 학원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학원에서 내가 속한 그룹은 원래는 4월 시험에 대비해서 편성한 그룹이 아니고 8월초에 보는 시험에 대비해서 편성한 그룹이었다. 4월 시험은 8월 시험의 시험유형을 알아보기 위해서 미리 보는 시험인데, 시험과목 9과목 중 암기 과목 몇 과목만 먼저 붙을 요량으로 암기 과목 위주로 공부해서 시험장에 갔었다.

학원 다닐 때는 삐쩍 마른 몸 덕분에 엉덩이가 너무 아파 방석용 스펀지를 한꺼번에 3개씩이나 넣어서 만든 크고 두꺼운 방석을 가지고 다녔는데(그 시절의 몸무게는 고작 43~44kg 정도였음), 시험 볼 때도 이 방석을 시험장에까지 들고 가야만 했다.

1교시 시험을 치르고 교단 위에 그 방석을 놓고서 그 위에 눕고, 2교시 끝나면 다시 눕고... 시험장에서까지도 쉬는 시간에는 누워있어야만 했었던 나의 기막힌 행동을 시험 감독관들과 다른 수험생들은 황당하게 바라보았지만,
....

다른 방도가 없었다.







1980년 4월 대입 검정고시 기간 중에는 어이없고도 황당한 수험생이었지만 시험운도 따라서 내가 공부한 것들이 많이 출제되었고, 취약 과목인 영어와 수학은 앞자리 수험생의 답안지에서 반 정도를 베꼈다.(보고 썼다)


왜? 전부 안 베끼고 반만 베꼈냐고 묻는다면, 앞의 수험생 실력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더구나 80년 당시는 검정고시 채점이 기계가 아닌 사람 손에 의해서 채점되는 방식인데, 앞·뒤 수험생의 답안지가 똑같으면 뻔한 결과를 낳기에 “어차피 영․수는 대충 찍을 판국인데, 찍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산으로 반 정도만 베꼈다.


대입 검정고시 시험제도는 총9과목의 평균 점수가 60점 이상, 그리고 전 과목 4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만 한다. 혹 9과목의 평균 점수가 60점이 아니고 70-80점 이상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치룬 시험생일지라도 1과목이라도 40점 이하가 나오면 전 과목 합격이 아니고 60점 이상 취득한 과목만 부분적으로 인정해주는 시험제도이다.(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2005년 현재는 시험 생들의 합격률을 높여주기 위해서 시험 과목도 8과목으로 줄었고,40점 이하의 ‘과락’제도로 없어졌다고 한다)


1980년 4월의 시험결과는 평균점수 62.5아니면 63.5의 턱걸이 점수로 합격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4월 19일,20일 실험을 치르고 5월 15일에 합격증을 받았는데도 검정고시 학원은 처음 예정 되로 7월 말까지 다녔다. 집념, 실력, 운, 컨닝...으로 대학 입학 자격 까지는 취득을 했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대학 입학은 너무 거리가 먼 상태임을 알기에 대입입학자격 합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다니는 검정고시 학원을 합격증을 받고도 다니는 희한하면서도 희귀한 학원생이 되었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날씨까지 서늘해 그 해 여름은 내 생애에 가장 편한 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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