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4, 2006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49.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49.

느낌이 있는 삶49. - ‘남들보다 내가 조금 더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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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말하지만 특별한 선물이나 댓 가도 없었다.

‘남들보다 내가 조금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남을 도와주는 동기의 전부였다.

이런 내 성격 덕분에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몇몇 사람들까지도 자기를 도와 줄 때는 고마워 하다가 남들을 도와 줄 때는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처신을 약삭빠르거나 실속 있게 처리하는 쪽이 아니다

더구나 남을 도와 줄 때도 처음 1, 2번 도와 줄 때는 내 마음가짐을 고마워해도, 횟수가 3∼4번에 이르면 이미 도움 받는 것이 습관화 되어서 내가 자기들을 도와주는 것을 당연시하다가 나중에는 도와주지 않으면 ‘야속한 놈’이 되어서 결말에는 원수처럼 사이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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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씹 주고도 뺨 맞는다.”는 말처럼 결국은 도와주고도 “만만한 존재로 비췄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단점일 것이다. ‘내 이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5년 동안 힘든 일들을 연속해서 겪는 나한테만 유독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내가 그들한테 만만한 존재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http://www.mryoum.com/ 내용 중 내 카드를 이용해 남들이 3000만원을 썼다는 내용이 있다.
자기와 절친하게 지내는 다른 친구들한테는 자기체면 손상된다고 단 10만원, 100만원도 못 부탁하면서 나한테 와서 부탁하고, 떼를 써서라도 도움을 받아간 것까지는 좋다. 내 카드를 돌렸으면 나하고의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도 나중에 계산할 때 딴 소리를 하거나, 다른 채무관계부터 정리하거나,... 내 것은 맨 나중에 하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양반이다. 결말에는 전화 피하는 파렴치한 행동이 무슨 큰 무기라도 되는 양 내 쪽에서 거는 전화 자체를 피하고 있다. 나중에는 나 혼자 독이 올라 씩씩거리고 짜증을 내면 짜증을 내야하는 나는 ‘성격 까다로운 괴팍한 놈’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남들한테는 점잖고, 인사성 좋고, 체면 지키면서도 왜 나한테만 이런 태도를 보이는가?

현금이 있어서 빌려 준 돈도 아니고 자기들이 부탁하고, 매달리고, 떼를 써서 나 역시 힘들게 카드를 돌려가면서 도와주었으면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용이라도 지켜야 되는데, 나한테는 믿음도, 신뢰도, 신용도, 체면도 지키지 않으니, 내가 편한 친구인가? 만만한 존재인가? 어수룩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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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프고 성격 까다로운 나는 자기들을 뒷바라질 해야 하는 놈이고, 나를 짜증내게 하는 몸 건강하고 성격 무던한 제 놈들은 나에게 어떤 존재들이란 말인가!

두 번만 만만하고 편하게 보였다가는 칼이라도 들이 댈 놈들이다.

나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지난 4년간의 몸 고생, 마음고생, 돈고생은‘내가 불러들인 화근이고 고생’ 이라고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

이 사람들 말에 화가 치밀다가도
종교란 무엇인가!
손해 안 보고 사는 것이 최고의 지혜인가?
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쌓고 사는 종교인들은 도대체 어떤 지혜를, 어떤 믿음을 간구 하는가?....

거룩한 척(?)하는 것과는 담 쌓고 살아가는 황당한 목사지만 그래도 가끔은 종교적 명상으로 마음을 가라앉힐 때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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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23, 2006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48.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48.


느낌이 있는 삶48. - 내 지난날의 생활 방식....오늘의 어려움을 있게 한 가장 큰 요인들,,,



학사 경고까지 받으며 1학년이 지나가고, 2학년이 되자 내가 가지고 있는 손재주와, 미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몇 학생들에게 많은 과제물들을 해주었다.

몸 사정이야 어떻든 졸업 작품을 4번이나 했었다.

그림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고, 마음도 좋고(?) 집이 가깝고, 졸업하고도 집에서 쉰다는 ‘이유 아닌 이유’가 졸업 작품을 4번씩이나 하게 했다. 한번은 내 졸업을 위해서, 나머지 3번은 남의 학번 졸업 작품에 주연으로서 가담했다.

댓 가는 밥 한 끼 얻어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의 이런 성격이 오늘의 어려움을 있게 한 가장 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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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94년. 신 대원 다니던 시절, 94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끔찍하게 아팠다. 몸의 열이 나중에는 다리로 몰려서 심하게 고생을 할 때였다. 다리 전체가 곪지는 않았지만 발뒤꿈치가 터지고, 진물이 나고, 발뒤꿈치의 살들이 심하게 상해서, 꼬박 1년 이상이나 고생을 했다.


끔찍하게 아픈 20일이 지나자마자 신학에 대한 열정은 있으나 신학지식이 부족한 여 집사를 위해서 그녀의 한 학기 리포트를 모조리 해 주고, 그 후 2년 동안은 매 학기마다 해 주었다.


강도사 인허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 주해, 설교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98년 봄에는 내 것이 아닌 친구 전도사를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1주일 동안 논문, 주해를 작성 해 준 덕에 난 쓰러지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나 학생부의 행사가 있을 때는, 나만이 갖고 있는 미적 감각과 손재주를 꾀부리지 않고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면서 교회 생활을 해왔다.


남에게 없는 게 나한테 있을 때는 그것이 마음이건, 손재주건, 머릿속의 지식이건, 경험이건, 돈이건, 물건이건, 심지어 신용까지도 쉽게 나눠줬던 게 내 지난날의 생활 방식이었고, 내 성격의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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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22, 2006

느낌이 있는 삶47. - 꼴사나운 ‘똥 폼’? ...쉽게 볼 수 있었던 풍경!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47.

느낌이 있는 삶47. - 꼴사나운 ‘똥 폼’? ...쉽게 볼 수 있었던 풍경!



아마도 전국의 수많은 대학 중에서도 성대 자연과학 캠퍼스 건물만큼 건물 입구에서 쉬거나, 계단 밑에 누울 곳이 있는 학교 건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앞에서 장황하게 썼듯이 몸이 조금만 힘들거나 어쩔 수 없이 햇볕을 쬐었더라도 햇볕을 쬐고 난 후에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곳에 앉아서 한참을 보내야 하고, 나중에는 삐쩍 마른 몸의 상체를 거침없이 드러내서라도 온 몸을 식혀야 하고, 그것만으로도 안 되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서라도 심장을 안정시켜야만 했다.

이 책을 성대 자연 과학 캠퍼스에 다녔던 80, 81, 82, 83, 84 학번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20년여 전 농대 앞 출입구에서 보곤 했었던 나의 모습을 곧 바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늙은 간디만큼 앙상한 신체를 드러내고 멍하니 농대 건물 입구에서 앉아 있어야 했던 것은 철학을 한답시고 ‘똥 폼’을 잡은 것도 아니고, 천재나 괴짜 흉내를 내기 위해서 ‘꼴사납게’ 군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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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라도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뿐이다.

남다르게 몸이 나쁜 학생으로서 ‘성대 건물’만큼 나를 편하게 해 줄 대학은 없었을 것이다.

이정도의 해프닝은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라 내가 살았거나 갔었던 장소에서는 쉽게 연출 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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