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3, 2006

느낌이 있는 삶51. - 발가락에 콘돔을 씌운 후에....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51.

느낌이 있는 삶51. - 발가락에 콘돔을 씌운 후에....다 지나간 시절의 일이지만....


명색이 목사이면서도 다른 종교인들이 자주 내뱉는 ‘사랑’, ‘자비’, ‘헌신’, ‘영적’,... 따위의 종교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들을 되도록 절제하면서 살아 왔고, 지금도 이런 단어들은 극도로 제한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껏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의 기본원칙.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던 몇 가지를 적어서 내 생활 습관과 생각의 밑바탕을 들춰 보이고 싶다.

91년부터 95년까지 발 때문에 무던히 고생했었다.

당뇨병 그것도 인슐린 주사를 맞는 I형 당뇨병에서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이면 합병증들이 서서히 몸에 나타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것이다. 내 경우에는 처음으로 나타 증상들은 발톱 빠지는 증세와, 피부의 건조화, 그리고 잇몸 변형이었다. 10년이 지난 86년부터 이러한 증상들이 조금씩 나타났다. 15년 정도인 91년경부터 95년까지는 합병증의 여러 가지 증상들이 발과 심장에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 고름이 끼고, 발톱이 빠지고,...내 딴에는 열심히 치료한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더 심해져서 발가락이나 뒤꿈치에 적은 구멍이 날 정도로 발의 상처들이 아물지를 않았다.
발이 이렇게 망가지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산책만 하는데도 오는 증상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면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산책인데도 인슐린 주사를 맞은 지 10년 정도가 되자 나에게는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두꺼운 양말을 겹쳐 신어도,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골라 신어도,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산책만 해도 물집 잡히고, 잘 때는 가끔가다 바늘로 쑤셔 놓은 듯 따갑게 아프고, 뒤꿈치나 발가락에 물집 잡히고, 발톱 빠지고, 잘못하면 고름 끼고.... 발에 생긴 이런 증상들이 89년부터 시작되었다.



.

91년 지방 신학교 3학년에 편입하고, 93년 신 대원에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하고 94년 봄에 복학을 했다. 91년 봄에 부모․형제의 울타리를 떠나고자 창문하나 없는 희한한 구조의 오피스텔 방 하나를 전세 보증금 1000만에 얻어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올 때에 300만원이 통장에 있었다.


91, 92, 93, 94 가을까지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약값은 통장에 있었던 300만원과 보증금1000만원 중에서 일부와 조카를 맡아서 공부 가르쳐주고 받는 수고비와 남의 머리를 가끔 해 주고 (87년부터 2~3년간은 미용에 관심을 가지고 미용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90년까지는 간간이 남이 머리를 만져주고 수고비를 받았음) 받은 수고비를 보태서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약값 모두를 해결했다.


94년 10월에는 보증금이 600만원 남았었다. 총 1300만원 중에서 600만원이 남았으니 3년 반 동안 알뜰하게 살 때였다.

.

.

94년 10월 학교 문제로 양지로 이사 가서 96년 9월까지 살았다. 94년 10월 양지에 이사 간 뒤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주기 시작했지만, 주거 환경은 방 한 칸에 쥐들이 수없이 들락거리는 부엌과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방을 800만원 전세에 살았다.


가전제품이라고는 TV, 세탁기, 오디오 없었고 전기밥솥과 중고 냉장고가 전부였다.


빨래는 보통 밟아서 할 때가 많았는데,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는 가루비누를 듬뿍 풀은 물에 빨래를 며칠씩 담가 놓곤 했었다. 빨래를 밟을 때 발의 상처에 비눗물이나 오물이 들어가지 말라고 비닐 백을 다리에 묶거나, 심지어 발가락에는 콘돔을 씌운 후에 고무줄로 위를 조인 다음에 빨래를 밟았었다.


내 몸은 찬물에 못 견뎌서. 여름에도 보일러로 물을 데워서 물 온도를 따뜻하게 조절한 다음에야 빨래를 밟아야 했는데, 덥고 힘들어서 헉헉대다 보면 나중에는 사람도, 빨래도 구분 할 것 없이 아예 벌거벗은 체 수 없이 물을 뒤집어쓰면서 빨래를 밟았다.


나 자신은 이렇게 생활하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세탁기와 그 밖의 가전제품들은 안 사고 그 돈으로 다른 신학생을 도와주었다.


또 91년부터 98년까지 틈틈이 조카들과 다른 아이 1,2명의 공부를 돌봐주고는 수고비를 받았는데 이 수고비의 반 이상이 남들을 도와주는데 사용 되었다.

.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