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09, 2006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5.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5.

느낌이 있는 삶5. - ‘성기 발랄한 나이’의 ‘영원한 내 장난감(?)’을 기억하며...



몸이 저리고 아파서 손이 닿는 부위는 쉬지 않고 주물렀다’ 이 표현 속에는 밝히기도 힘든 지독스런 과거의 흔적이 2006년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기’라고 점잖게 표현하고 있는 페니스, 자지, 남근, 좆을 만지는 버릇이다.

이미 “죽ㆍ지ㆍ않ㆍ고ㆍ살ㆍ아ㆍ서” 시리즈의 그 첫 번째“아직도 살고 싶다”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내 나이 17-19살의 한참 ‘성기 발랄한 나이’에 내 페니스는 2년 동안 발기 한 번 안 됐다.
이런 몸이 내 몸이었다.

누워만 있던 그 시절에 온 몸이 저리고 아파서 깨어있는 시간 동안은 자신의 손으로 만져지는 부위는 무조건 주물러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손이 자연스럽게 사타구니로 갈 때가 많았다. 또 자신의 손의 위치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는 곳이 사타구니 부근이었다.

펄펄뛰는 청춘이 혼자서 죽어만 가던 사랑채의 사랑방에서 누워있는 상태에서 수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져졌던 것(?) 같다.




힘들게 배설한 똥ㆍ오줌을 사랑채의 방문 앞에 놓아두면 부모님, 간혹은 형제들이 처리해 주었어도 78년 여름부터 79년 여름까지의 1년 동안의 밥 수발은 큰 형수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77년 가을부터 79년까지의 2년 중의 1년. 분가해서 서울에서 살던 큰형내외가 내려와 다시 합친 것은 1978년 여름이었다.)

78년이나 79년의 큰 형수의 나이라야 고작 26-27살의 나이 어린 여자였다.(53년생)

아무리 죽어 가는 내 몸뚱이라지만, 18-19살의 몸뚱이였다. 삐쩍 마른 채 죽어만 가는 나의 초라한 몰골만으로도 부족해서 아무 때나 자신의 페니스를 주물럭거리는 나의 희한한 습관이 당시 26-27살에 밖엔 안 되었던 큰 형수의 눈에 거북하게 보였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지금의 이런 생각조차도 내 나이가 40살 정도가 되어서야 받아들여 질 수 있었던 생각이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당시에는“삼촌이 희한하다.”라는 큰 형수의 말을 누이한테서 전해 들었을 때는 형수의 말을 야속하게만 생각했었다. 나에게 있어서 사타구니나 페니스를 만지는 습관조차도 내 몸의 다른 부위들처럼 깨어있는 시간동안에 무의식중에 만져지는 습관에 불과했을 뿐이다.

지금까지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얼굴을 붉힐 필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거북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음미하고 있으니,...나이 먹는다는 것이‘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나이 먹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 당시의 내 페니스, 일명 남근, 자지,...는 그 시절에 시간만 나면 내 손에 의해 주물러야 하고 만져져야 신체의 일부분일 뿐 자위행위나, 섹스,,..

보통 사람들이 연상하는 그럴듯한(?)생각은 없었다.

이미 1권에서도 밝혔듯이 누워서 죽어가던 2년 동안은 발기 한 번 안된 몸이고, 페이스였고, 자지였다.


다만 다른 부위는 마를 만큼 말랐어도 내 페니스, 내 남근, 내 자지만큼은 신체의 특성상 만져지기 좋은 상태로, 그리고 만지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영원한 내 장난감(?)’으로서 그 몫을 담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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